▒ 연암연구소 ▒
 
작성일 : 12-03-24 11:38
친일아버지와 독립운동가 아들
 글쓴이 : 능재
조회 : 629  
친일파 아버지와 독립운동가 아들
 
  한옥마을을 둘러 보면서 금력과 권력에 눈멀어 객사한 한 사람을 만난다. 바로 해풍부원군인 윤택영(尹澤榮, 1876년 ~ 1935년 10월 24일)이다. 그의 생가는 이제 사람들의 한옥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그기를 다녀가는 사람들 중에 그의 생애를 돌아보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싶어 몇자 옮겨 본다. 그는 조선의 문신이자 정치인이며 대한제국의 관료, 일제 강점기에도 일본으로부터 후작의 작위를 받은 귀족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조선 순종의 장인이어서 조선의 마지막 부원군인데 정작 사위인 순종보다는 두 살 어렸다. 그러니까 순정효황후의 친정아버지인 것이다. 이 곳의 옮겨 놓은 생가는 그의 딸을 순종의 2번째 비로 만들기 위하여 ... 소위 로비하기 위하여 지었단다.
 
 그는 돈에도 욕심이 많아 채무등으로 후작의 작위를 불명예 실작당했으나 곧 회복되어 윤택영 사후에 차남 윤의섭이 습작했다.
 
 그의 부채이야기다. 윤택영은 헤픈 씀씀이로 부채를 쌓아 ‘채무왕(債務王)’, '차금대왕(借金大王)'으로 불렸고, 1920년 아들 윤홍섭과 함께 베이징으로 달아나 그곳에서 사망했다. 한편 아들 윤홍섭은 일본 유학 중 만난 신익희, 김성수, 장덕수 등과 꾸준히 연락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하였고, 창씨개명도 거부하였으니 이는 부자간의 아이러니다.
 
 1926년 5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국장으로 온 나라가 어수선했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국장은 순종이 타계한 4월25일부터 인산일(因山日)인 6월10일까지 46일간 이어졌다. 윤택영은 순종의 부음을 틈타 비밀리에 귀국하였으나 언론의 주목을 한 몸에 받게 되었는데 ‘개벽’‘회고 조선 500년 특집호’에는 '뜬금 없이'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되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부채왕(負債王) 윤택영 후작은 국상 중에 귀국하면 아주 채귀(債鬼·빚귀신)의 독촉이 없을 줄로 안심하고 왔더니 각 채귀들이 사정도 보지 않고 벌떼같이 나타나서 소송을 제기하므로 재판소 호출에 눈코 뜰 새가 없는 터인데, 일전에는 어찌나 화가 났던지 그의 형 ‘대갈대감’과 대가리가 터지게 싸움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게 싸우지 말고 국상 핑계 삼아 아주 ‘자결’이나 하였으면 충신 칭호나 듣지.」(‘개벽’ 1926년 6월호 ‘경성잡담’)
 
 엄청난 부채와 빚쟁이들의 독촉에 시달린 그는 다시 중국으로 망명, 베이징에 체류하다 1935년 10월에 객사하였단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다.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도 선정되는 명예(?)를 안았다.
 
 그나마 그의 아들 중 윤홍섭은 자신의 누이 순정효황후의 내탕금을 받아 임정과 일본 유학생들에게 독립운동 자금과 유학 학자금으로 송금해 줄 수 있었는데 아버지와 숙부가 친일 관료였으므로 의심받지 않고 송금해줄 수 있었다고 한다. 
 
 윤택영의 동생 윤덕영은 한일 합방 당시 순종비 윤씨가 옥새를 치마폭에 넣고 내놓지 않자, 조카딸을 협박하여 옥새를 조선총독부에 갖다 바쳤다. 복잡한 가계의 역사를 돌아보며 역사는 미래를 말하고 있다.     남산에서 이선웅이 마음대로 생각해본 이야기 조합들 ....